앞의 글에서도 살펴보았듯 주기적으로 터지는 버블은 언제나 개인들에게 신분상승의 기회를 던져줍니다.
다만 버블 형성과 붕괴의 역사를 자세히 알지 못하는 개인들만이 바닥을 예단하고 진입했다가 지리한 박스권에 지쳐서 떠난 후 상승세를 놓치고, 상승세를 부정하다가 불꽃장세를 연출하기 시작했을 때에야 참지 못하고 달려들어 꼭지에서 물립니다.
저는 주가에 어떠한 절대적인 법칙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부정하는 입장입니다.
시리즈물의 첫글에서 말씀드렸듯 증시는 통계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대상이기에 모든 것은 '~ 가능성이 높다' 혹은 '~ 가능성이 낮다'라는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이는 모든 사회과학의 대상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단지 많은 개투들이 이분법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어서 통계적 사고의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이 있을 뿐입니다.
저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하다고 여기는 몇 가지 결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 두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주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높이 올라가고 또한 더 깊이 떨어진다.
2) 주가가 천정에 머무르는 기간은 짧으나 바닥에서 횡보하는 기간은 길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도출해낸 자료는 다름 아닌 우리 시장의 역사 그 자체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금 더 다이내믹함을 더하기 위해 당시 제가 매매했던 내역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해보겠습니다.
3. 9.11 테러와 내수 호황
IT 버블의 붕괴 과정에서 숏 포지션으로 계속 따라가던 저는 2000년 말 500포인트 근방에서 긴 아래꼬리를 가진 양봉이 반복해서 출현하며 바닥의 징후를 나타내자 마침내 선물 매도 포지션을 청산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제 스스로에게 휴식의 기간을 선물하고 바닥권의 매집기간을 관찰하며 매매를 쉬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때 저는 동료 두 명과 싱가포르로 여행을 떠나 두리안이라는 신기한 과일도 먹어보고 망고와 파파야도 진저리나게 먹었습니다. 싱가포르는 참으로 깨끗한 도시였습니다. 우리는 호텔방에 장기투숙을 하면서 시내 관광을 다니고 다양한 나라 음식을 잔뜩 먹고 다녔지여. 이때 아마 체중이 5킬로 가량 쪄서 후에 다시 다이어트를 하느라 진땀을 뺐었습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저는 스승님의 권고대로 경제 공부를 하고 증권사를 다니며 인맥을 쌓고 동료 트레이더를 만나 술자리를 하는 등 몇 개월 간의 휴식기간을 가졌습니다.
스승님이 매매를 하고 싶어하는 저에게 일침을 놓았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만 먹어라. 바닥은 길 것이다. 충분히 먹은 후에 먹지 못할 것까지 탐하다가는 제 욕심에 제가 넘어가는 법이다.'
그럼에도 경험이 아직 부족했던 저는 매일의 무료한 생활을 견디지 못해 결국 몇 개월만에 다시 선물 매매에 손을 댔지만 10번 연속 손절매라는 최악의 오명을 매매일지에 남기고 2000만원 가량을 날린 후 더 쉬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는 스승님의 현명함에 혀를 내둘렀답니다.
천정은 짧고 바닥은 길다라는 격언의 의미를 이때 확실히 깨달았던 듯 싶습니다. 바닥은 1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윽고 그날이 찾아왔습니다. 2001년 9월 11일.
전 그날 트레이더 동생 한 명과 삼성동 고기집에서 쏘주 한병을 까고 있었습니다. 지리한 박스권 야그를 하며 요즘 장세가 너무 지루하다... 이런 야그를 하고 있었는데 참으로 아이러니하죠. 갑자기 식당 안이 술렁이기 시작하더니 TV 채널이 바뀌고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생중계되었습니다.
동생은 그 당시 풋옵숀을 오바하여 홀딩하고 있었습니다. 홀딩 이유인즉, 5이평선이 20이평선 아래에서 역S자형 패턴을 보이고 있었고 11일 당일 파란 음봉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 동생은 풋옵숀에서 대박이 날 것이 분명했지만 세계의 유래없는 대참사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했지여.
그리고 그 다음날 거래소는 개장 시간을 세 시간 늦추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개장하자마자 9% 이상 하락하며 출발하여 10%에 도달하자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되었고 그러고도 이어진 추가하락은 종가를 -12.02%에 맞춰놓고 말았습니다.
풋을 가지고 있었던 동생은 말 그대로 벼락 대박을 맞았지여. 그러나 결코 웃으며 기뻐 날뛸 수 만은 없었던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습니다.
미국 증시는 9.11 여파로 나흘간 휴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9월 17일 뉴욕 증시의 개장 직전 FRB는 연방기금 금리를 3.50%에서 3.00%로 인하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날 다우지수는 7% 가량 하락하며 마쳤지만 테러 여파로 소비가 얼어붙을 것이란 전망과 미국의 보복 가능성 등으로 다음날부터 주가가 추가하락하여 주간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의 하락율인 -14.3%를 기록했습니다.
시장을 관찰하던 저는 오랜 휴식기간을 뒤로 하고 다시 시장으로 진입할 타이밍을 잡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상당히 신뢰하는 지표인 베어 트랩(BEAR TRAP)의 발생이었습니다.
저는 9.11 테러 이후에 곧바로 선물 매도로 진입하지는 않았는데 그 이유는 돌발 악재는 도리어 매수의 기회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당시 동료 트레이더와 함께 9.11 테러가 과연 돌발 악재인가에 대해 활발히 의견 교환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쨌든 바닥을 예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곧바로 매수에 가담할 수도 없었기에 그저 시장을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세가 베어 트랩을 만들었을 때에는 주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시세는 더 하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물 매수 포지션으로 진입을 했습니다.
제 전략은 박스권 하단의 베어 트랩에서 진입을 했으니
1) 20일선을 붕괴하거나
2) 박스권 상단에 도달하면
포지션 청산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세는 순조롭게 올라 박스권 상단에 도달했고 저는 일단 수익 보전의 차원에서 박스권 도달 후 첫 음봉에서 포지션을 청산했습니다.
그러나 시세는 강했습니다. 곧 박스권 상단을 돌파해 올라갔고 저는 추격매수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원칙에 충실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저항선을 돌파했으니 이제 지지선으로 변한 저항선으로의 되돌림이 한번은 발생할 것이다.
만일 그러한 일이 발생한다면 매수포지션으로 재진입할 것이다.
신기하게도 제 생각은 그대로 들어맞았고 시세는 되돌림 후 지지받고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지선에서 반등 후 첫 양봉에서 선물 매수 진입을 하였고 20일선을 붕괴할 때까지 포지션을 보유하기로 전략을 짰습니다.
시세는 정확히 20일선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올라갔습니다.
사실 이 구간에서 포지션을 보유하기가 심리적으로 매우 괴로웠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누렇게 색이 바랜 제 매매일지에는 그 당시 미국 증시가 1월과 3월에 다소 큰 조정을 받으며 하락전환하는 모습이 나타났다고 적혀 있는데, 이상하게도 우리 증시는 상승 랠리를 계속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미증시와의 디커플링을 설명하기 위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며 코리아 리레이팅(KOREA RE-RATING)이 일어나고 있다는 설이 나돌았습니다. 저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였으나 여하튼 청산 신호가 나오지 않았으니 불안한 마음을 옥죄며 끝까지 배짱을 튕겼던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기업의 실적 개선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IMF의 고통 속에서 처절한 구조조정을 마치고 난 우리 기업들은 개선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뚜렷한 수익성 호전 및 재무안정성의 증가를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한편 9.11 테러 이후 정부는 유동성 확충을 위해 네 차례나 금리 인하를 단행하였고 재정을 조기 집행하며 건설경기 부양에 힘썼습니다.
이전 글에서 말씀드린 모든 조건이 만족되었지여?
1) 유동성 팽창
2) 정부 주도의 경기 부양
3) 펀더멘털의 뚜렷한 개선
4) 코리아 리레이팅이라는 대의명분의 부상
바로 이때 현재 장세와 아주 유사한 상황이 일어났습니다.
IT버블의 초호황을 경험한 후 고점에서 물려 있던 개투들이 앵그리 머니(ANGRY MONEY)를 증시에 투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초특급 버블이 해소된 후 다시 상승이 올때 대개 개투들의 복수심이 극에 달해 공격적인 시세를 내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후끈 달아오른 우리 증시는 미 증시가 베어마켓 랠리(BEAR MARKET RALLY)를 끝마치고 하락하는 와중에도 900포인트를 돌파하며 올라갔습니다.
그러자 이때 애널들이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져? ㅋㅋ
주가지수 1000포인트 돌파설이 만연했고 심지어는 1500포인트까지 간다는 얘기도 나돌았습니다.
9.11 테러 이후 3조원 이상 주식을 순매수하면서 증시 상승을 주도했던 외국인은 주가가 800포인트를 돌파하는 시점부터 순매도 기조로 돌아섰습니다. 물론 주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승행진을 이어갔지만 외국인들은 이미 우리의 내수시장이 과열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던 것으로 저는 봅니다.
어쨌든 저는 제 원칙대로 시세가 20일선을 하향돌파한 시점에 매수포지션을 전량 청산하고 관찰 모드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재미있는 패턴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확대 삼각형 패턴이 등장한 것이지여.
스승님이 저에게 한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지금 나타나는 패턴을 잊지 말아라.'
확대 삼각형 이후 20일선 밑에서 나타난 5일선의 쌍봉에서 저는 매도 포지션으로 진입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하락추세가 진행된다는 전제 하에 20일선을 기준으로 매도진입과 청산을 반복했습니다.
다시 한번 추세추종의 강력함과 단순함에 스스로 감탄하며 조금씩 쌓이는 계좌 금액을 보며 흐뭇해 했던 것 같습니다.
2002년은 참으로 다사다난한 해였습니다.
6월 월드컵의 개최. 전국민이 붉은 악마로 한 마음이 되어 도로를 점령하고 월드컵 4강 진출에 열광했던 그 때.
누구라도 잊기 힘든 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광란 속에서 발표되는 경제 지표들은 하나둘씩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습니다.
내수 호황을 이끌었던 소비 버블이 꺼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민간소비 증가율이 상반기의 7%에서 3분기에 6%, 4분기에 5%가 되었고, 2분기의 총저축율은 27.5%로 주저앉았는데 이는 20년 만의 최저 수준인 것으로 보도되었습니다.
가계 부채는 순부채 -12조 5,000억원으로 집계되었는데 이는 불과 1년 전 27조원으로부터 35조원 이상이 감소한 것입니다. 그만큼 전국민이 흥청망청 소비에 열중했다는 뜻입니다. 또한 정부가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주택 담보 대출을 완화시켰던 것이 급격한 주택 담보 대출의 증가를 불러왔습니다.
신용카드업이 초호황을 누리면서 신용카드 사용액이 2002년 상반기에 300조원을 넘어섰습니다. 카드는 학생과 무직자들에게까지 무분별하게 발급되었고 그 결과 연체율이 크게 증가하여 카드사가 경영위기에 빠지자 정부는 현금서비스 비중을 50%로 낮추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카드 돌려막기로 겨우 버티고 있던 개인들이 파산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카드사들이 대규모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시기에 신용불량이 되었으며 그 결과 소비가 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었습니다. 한때 소비 버블로 초호황을 누렸던 내수경기는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위의 차트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주가 또한 상승분을 모조리 반납하고 말았습니다.
[출처:투자노하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