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칼럼/미녀53 칼럼

시장의 역사(7)

언덕위의바람 2020. 1. 1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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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플레이어로 활동하는 동안 저는 주식, 선물, 옵숀, 외환 시장에 두루 걸쳐서 참으로 다양한 시장에서 매매를 했지만 그 중 어떠한 시장의 트레이더로 가장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단연코 주가지수 선물 트레이더라는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답할 것입니다.

 

주가지수 선물은 우리나라 전체 경제의 흐름을 반영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가치투자자들이 주로 하는 BOTTOM-UP APPROACH보다는 TOP-DOWN APPROACH를 통해 매매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시장과 경제, 그리고 시대를 바라보면 그 안에서 재미있는 현상들이 얽혀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분명한 수익의 기회와 추세가 눈에 띄게 됩니다.

 

추세 추종자인 저로서는 이와 같이 거대한 흐름을 감지해내는 것이 언제나 최선의 관심사였고, 저의 모든 매매는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더더욱 이러한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몇 편의 글을 통해 저는 일단 시장의 역사 시리즈를 끝마치려고 합니다.

시장의 역사는 파고들면 한도 끝도 없는 분야이기 때문에 엑기스만을 실전 투자와 연관지어 설명해보려고 많이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나머지 글에서는 앞으로 닥쳐올 시대의 흐름을 읽어보고 여러분들이 어떻게 해야 부를 기준으로 나뉘어지는 자본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 구조에서 상층부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7. 경제사조의 역사

 

어느 시대에나 그 시대를 지배하는 경제사조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경제의 큰 흐름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이와 같은 경제사조가 깔려 있습니다.

 

15세기에서 18세기는 유럽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신대륙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곡물 경제에서 화폐 경제로 이행됨에 따라 '부르조아'라는 신흥 상업세력이 부상했던 시대입니다. 이와 같은 상업세력은 자신의 기득권을 보장하고 확장하기 위해 세금을 바치며 왕권과 결탁하였고 이에 따라 절대 왕정은 군대를 이용하여 상인들을 보호하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스페인이 신대륙 무역을 통해 큰 부를 축적하였으며 산업의 중심이 농업에서 상업으로 바뀌면서 자본주의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화폐경제, 보호무역주의, 식민지 개척 등이 국가 부의 기초를 이룬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 있던 이 당시의 경제 사조를 중상주의(MERCANTILISM)라고 합니다.

 

한편 농업을 주 산업으로 영위하던 프랑스에서는 중상주의에 반발하여 농업이 자본주의 발전의 토대가 된다는 사상인 중농주의가 나타났는데 이러한 두 사상은 현대 경제학의 기초를 이루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의 자유 방임주의로 이어집니다.

 

애덤 스미스는 1776년 펴낸 저서 <국부론(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에서 인간의 이기심이 부 창출의 원동력이 된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가운데 수요과 공급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경제활동을 조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국부의 원천은 농업도 아니고 상업도 아닌 노동(LABOR) 그 자체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오늘날 경제학 교과서에서도 거론되는 부의 3요소 중 하나입니다. 애덤 스미스에 의하면 부의 최대 창출은 노동의 분업화와 효율화, 그리고 정부 간섭의 최소화를 통한 시장 경쟁체제의 구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애덤 스미스는 이러한 자유방임주의 사상을 통해 어떻게 영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였습니다.

또한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제국주의 사상과 맞물려 수요는 무한하다는 가정 하에 생산의 효율성 증대만이 중요시되는 흐름이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생산 효율의 극대화가 이루어졌지만 한편으로는 제한된 수요를 장악하기 위해 생겨난 불공정 경쟁과 독과점, 부의 양극화, 노동의 기계화, 그리고 사회복지의 저하 등의 문제점 또한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경제학이 종말을 맞이하게 된 계기는 바로 1929년 발생한 미국의 대공황입니다. 대공황은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자유주의 경제사조에 따른 무분별한 투자로 인한 초과공급을 피폐해진 노동 계층의 수요가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생산라인의 효율화를 통한 집중이 부의 분배 효율성을 저하시켰고 이에 따라 총수요가 총공급을 따라가지 못하자 기업과 채권 보증은행의 줄도산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때 자유주의를 대신할 새로운 경제사조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케인지안 경제학(KEYNESIAN ECONOMICS)입니다. 위 문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케인즈는 대공황의 발생 원인을 초과생산에 대한 충분한 소비가 없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진단했습니다. 즉, 수요는 결코 무한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위적으로라도 수요를 시장에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화폐를 시장에 공급하자는 얘기입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케인즈의 조언을 받아들여 뉴딜 정책(NEW DEAL ACT)이라 불리는 대규모 재정 정책을 펼쳤는데 이를 통해 실업율을 낮추고 노동자의 소득수준을 높여 소비를 활성화시키려 했습니다. 동시에 독과점 체제를 제한하고 최소한의 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등 분배의 효율성을 달성하고자 했습니다.

 

자유주의가 생산 증대에 따른 성장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대공황 이후의 케인지안 경제학은 분배에 따른 수요 창출에 노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결국 케인지안 경제학은 경제의 다각화와 부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 때때로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는 수정 자본주의로 귀결됩니다.

 

케인즈의 정책은 실제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미국 경기는 대공황 발생 3년 후인 1932년 저점을 찍고 반등하였습니다. 곧이어 세계 제2차 대전이 발발했고 이를 계기로 세계의 패권은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그러나 케인지안 경제학 또한 영원하지는 않았으니 그 문제점이 가장 극명하게 붉어져 나온 사건이 바로 제 1, 2차 오일 쇼크(OIL SHOCK)입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1961년 1월 회원국들의 원유 생산정책을 조정하여 유가 안정을 꾀한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석유를 높은 가격에 팔기 위해 지네끼리 뭉친 것이지만. 1973년 10월 이집트,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미국이 이스라엘을 원조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자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9월 빈에서 열린 회의에서 유가를 70% 인상시키게 됩니다. 거기에 더하여 12월 테헤란 회의에서 유가를 130% 추가인상함으로써 유가가 2달러 50센트 부근에서 10달러까지 폭등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경제는 물가와 실업율이 동시에 증가하는 심각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에 빠지게 됩니다.

 

이란의 회교 혁명 후 1979년 OPEC은 또다시 유가를 30달러가 넘는 수준으로 올림으로써 제2차 오일쇼크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다시금 세계를 불황에 빠트립니다.

 

경기가 불황에 빠지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총수요가 감소함으로써 발생하는 경기불황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총수요가 감소하게 되면 전반적인 물가는 떨어지면서 실업율이 증가하게 됩니다. 이럴 때 정부는 경제에 총수요를 공급함으로써 불황을 타계할 수 있다고 본 것이 바로 케인지안 경제학입니다.

다른 하나는 총공급이 감소함으로써 발생하는 경기불황인데, 바로 오일쇼크로 인해 생산원가가 폭등하여 생산주체들의 생산량이 감소했던 시기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되면 물가는 도리어 증가하는 와중에 실업율이 증가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불황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만일 케인지안의 주장대로 이러한 상황에서 재정확대 정책을 펴서 유효수요를 증가시키면 물가가 더욱 올라가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반대로 물가를 낮추기 위해 긴축정책을 펴게 되면 물가는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경기침체가 악화되지여. 케인지안 경제학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됩니다.

 

바로 이때 프리드만과 하이에크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게 됩니다. 신자유주의는 근본적으로 과거의 자유방임주의로의 회귀를 의미하나, 고전적 자유주의와 다른 점은 시장의 완전무결함을 주장하지는 않으며 단지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볼 뿐입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스태그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망할 기업은 망하게 놔두고 우선 물가부터 잡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근본 원인이 물가 상승(즉 임금상승에 따른 김업의 이윤 감소)에 있으므로 물가를 잡아야 시장이 원래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 것이지여.

 

일반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하며, 감세정책, 공기업 민영화, 복지정책 축소 등을 주장합니다. 또한 무역장벽을 개방하여 자본 이동의 세계화를 이룩하는 것이 시장의 효율성을 증대시킨다고 봅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기본적으로 대기업에는 유리하지만 중소기업이나 서민들에게는 불리합니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는 부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모든 현상을 경제적 관점에서 판단하는 물질 만능주의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 사조의 중심에는 미국과 영국이 있었는데 각각을 지칭하기를 레이거노믹스(REAGANOMICS) 대처리즘(THATCHERISM)이라고 합니다.

 

1980년대 미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1,2차 오일쇼크의 영향으로 인한 물가 상승과 수요위축, 그리고 고금리에 따른 경제 성장의 침체가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 기업의 부상으로 미국 제조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었고 저축대부조합의 파산 등으로 인해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타계하기 위해 로널드 레이건은 신자유주의 사조를 도입하여 사회복지 정책의 축소와 노동법 수정을 통해 노조 결성을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감세 정책과 더불어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레이건은 특히 감세가 경기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래퍼의 주장을 받아들였는데, 래퍼는 세율이 적정수준을 넘으면 도리어 조세수입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관계를 나타낸 곡선을 래퍼 곡선(LAFFER CURVE)이라고 하며, 아래와 같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감세정책이 경기 회복에는 분명 도움을 주었으나 래퍼 곡선이 예측한 것과는 반대로 세수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감세 정책의 대부분이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집중되고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는 그 혜택이 미미하여 실효세율은 도리어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비투자 증가율이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고 가계 소득 증가효과 또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이에 따라 재정적자가 확대되었고, 물가 안정 조치로 인해 달러 강세가 되자 무역적자 또한 확대되어 쌍둥이 적자의 시발점이 됩니다.

 

한편 영국의 마거릿 대처는 1979년 집권 이후 심각한 재정적자, 물가상승, 그리고 노동운동을 잡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하게 됩니다. 대처는 사회복지 프로그램에 대한 정부지출을 삭감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사회복지기관에 근무하는 많은 사람들이 실업자가 되었으나 기업 경쟁력은 강화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1980년부터 84년까지는 네 차례에 걸쳐 노동법을 개정하여 부당한 파업으로 피해가 발생하였을 시에 노조 측에 책임을 묻는 법안을 통과시킵니다. 또한 소득세를 줄이고 간접세를 늘렸으며 공기업 민영화를 추진하였습니다. 결국 실업율은 크게 증가하였으나 금융규제 완화를 통한 투자증가와 대기업의 성장으로 영국의 국제 경쟁력은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고소득 계층의 세금이 줄어들면서 소비를 자극하는 효과를 보였고, 이에 따른 경기 회복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회복지 정책의 축소, 노동자 복지의 감소 등으로 인해 부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1980년대 이후 전세계로 퍼져나가게 되는데 이는 대체로 이러한 사조를 도입한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으며 대개는 선진국들의 수출 증가를 위한 무역장벽 개방을 위한 구실로 사용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신자유주의의 파급은 글로벌 경제간 양극화 현상 또한 촉진시키게 되었습니다.

 

신자유주의 사조가 중요한 이유는 현 이명박 정부가 신자유주의 모델에 상당히 충실한 정책을 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거 레이건 시대의 미국 증시가 어떻게 각종 정책과 맞물려 돌아갔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우리 증시의 모습 또한 점쳐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글로 미루도록 합니다. ^^

 

[출처:투자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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